<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아름다운 세상

류창희 2019. 12. 27. 14:54

아름다운 세상

- 일이관지一以貫之

 

 

 

그러했으리라.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각자의 방향으로 질주한다.

그날 나의 벗 미카엘라가 지휘하는 아름다운 세상연주회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가야성당으로 내비를 맞추고 거의 목적지 근처에서 주춤거렸다. 불빛에 반사되어 더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길이다. 한 불록을 더 가서 좌회전 해야 하는데, 1차선에서 주춤거리니 2차선에 있던 택시가 돌발적으로 좌회전하다가 찌찍, ~~” 내차를 긋고 지나갔다.

택시 운전자가 먼저 내려 깍듯하게 인사한다.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나도 같이 내려 아유, 바쁘신데 어쩌죠?” 운전자가 준수한 청년이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서로 차를 살펴보니 어둡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차도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꼼꼼하게 부딪히고 긁힌 자리를 짚어 설명해준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원하는 대로 따르겠다며, 가장 깔끔한 처리는 보험회사를 부르라고 한다.

 

5년 전, 십년 넘은 나의 애마 마티즈가 터널 안에서 불꽃을 튀기며 멈췄다.

아들이 사고 이야기를 듣더니, 나이 들어 시간 강사로 뛰는 어미에게 차를 선물해줬다. 민트빛깔의 차다. “얘는, 내가 피크닉 다니니? 일하러 다니지.”라고 하니, 이제부터는 피크닉 나간 듯 가볍게 일하시라했다. 내 몸과 내 마음크기에 딱 맞는 사이즈다. 차는 작지만 조수석 바퀴 위의 플라스틱 범퍼라 해도, 전문수리업체에 가면 가격이 만만치 않다. 내가 더 미안해하고 마음 졸이는 이유다. 분명 내가 어정어정 사고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보험회사직원이 왔다.

사진을 찍고 경위서를 작성하고, 대략 견적이 어느 정도 나올 것이라는 설명을 해준다. 겉은 멀쩡해도 안의 보호막이 찢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택시 운전사는 줄담배를 피우기는 했지만, 예의바른 태도는 그대로 성실하다. 나는 보험회사 직원에게 그냥 가라고 하고 싶은데, 어찌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냥가면 절대 안 된단다.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다만 일이십만 원이라도 합의금을 받아야 나중에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 그럼 됐다.’ 나는 택시운전자에게 마치 장난처럼 그럼, 천원만주세요.”로 마무리했다. 물론 천원도 받지 않고, 사고접수 취소사인을 했다. 수정터널 앞, 컴컴한 골목어귀에서 세 사람은 고향에 다녀오다 길에서 헤어지는 오누이 마냥, 모락모락 온정을 피워 올렸다. 만약에 내가 모르는 절대자 그분께서 사고현장을 보고 계셨다면, 그 분들 또한 한 호흡을 멈추고 휴정하는 시간이었으리라. “먼저 가세요.” 그들을 보내고 나서야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타치오statio, 숨 고름 시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하다. 작은 산골마을, 그곳에서 봐주는 이, 알아주는 이 없이도 별을 바라보던 여린 풀꽃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잘했어, 잘했고 말구.’ 셀프위로를 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거의 끝날 시간이다.

자리가 없어 뒷자리 출입문과 가까운 기둥 뒤에서 쳄발로, 오르간, 류트, 테오르보, 고 음악 연주악기들로 스프라노 테너 바리톤의 조화로운 음악을 들었다. 오늘의 제목 <르네상스와 바로크 성음악과 세속음악>을 친구는 시대음악이라 했다. 그 당시, 작곡가 연주자 노래하는 사람들은 핍박받고 무시당했다고 한다. 난세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 “에서 흥기하고 예에서 바로서고, 음악에서 인생을 완성하셨던 공자님도 당대에는 상갓집 개喪家之狗라는 취급을 받았었다. 시대를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훗날 추앙받기까지 가시밭길이다. 그들의 고난으로 사랑은 완성된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과도기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몬테베르디(1567~1643)는 르네상스 시대의 최후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바로크라는 새로운 음악을 창시한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저녁기도는 르네상스적인 구양식과 바로크적인 신양식의 융합은 물론 성악과 기악의 놀라운 융화를 이루어낸 걸작으로 당시로 볼 때는 파격적이고 가히 혁명적인 종교작품입니다.’

 

 

가톨릭센터 신부님의 설명도 들었다.

어렵고 긴 음악을 함께 연주한 분들을 바라보며 친구가 한분, 한분 소개한다. 지휘하던 그 손끝의 소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 날, 우리는 독서회를 했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외출조차 어렵던 시절, 다섯 명이 한 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였다. 전문지식도 없이 날마다 기저귀나 갈고 이유식이나 만들던 손이다. 그때 우리가 읽던 교육문제나 사회문제의 씨앗이 발아한 걸까. 친구는 지휘를 한다. 나는 그 이전까지 지휘는 남자의 성역으로만 알았었다.

 

독서회 멤버들은 책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듯, 지금 모두 제자리에서 꿈을 디자인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소녀는 그저 두 손을 모은다. 가톨릭에서는 외인外人인 나에게도, 음악의 아우라가 은하수 물결 되어 연주한다. 아마도 미카엘라가 연주하는 꿈도, 몬테베르디도, 성모마리아도, 내가 존경하는 공자의 말씀 일이관지一以貫之도 한 마디로 사랑일 것이다.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사야,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니하다. 도는 하나로써 통한다.”

子曰 賜也아 女以予로 爲多學而識之者與아 對曰然ᄒᆞ이다 非與잇가 曰非也라 予ᄂᆞᆫ 一以貫之니라 - 衛靈公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길, 피크닉 나온 듯 충만하다.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