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창희 2019. 12. 27. 10:16

일등 사윗감

- 공야장公冶長 & 남용南容

 

 

 

좋은 신랑감 좀 물색해봐!”

어떤 신랑감이 좋은 신랑감인가.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인성도 좋은 신랑감이면 만사 OK! 그것도 옛말이다. 성공한 중년 정도의 연봉과 거주할 아파트와 자동차는 있느냐고 묻는다. 하기야 예전에 물색 있는 사윗감은 결국 수레를 잘 모는 자이다. 네 마리 말이 빛깔도 같고 힘도 비슷하여 마차가 흔들림 없이 잘 달리게 할 수 있는 바퀴의 성능을 찾는 것이 물색이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속담사전에서나 찾아볼 일이다. 성형 수술한 장모는 봐줄 수 있어도 통장 없는 장모님은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처갓집이 가까워야 아내가 편안하고 육아도움도 받을 수 있다는 21세기 신 풍속도다.

 

내가 결혼 할 때만 해도 며느리는 내 집만 못한 집에서 데려와야 한다.”

딸은 내 집보다 나은 집으로 시집보내야 한다.”며 나의 친정집은 은근히 사위 잘 본 처갓집이 되었다. 혼인의 성패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사람보다 그 사람의 가문을 본다. 배경을 선호하는 것은 스스로 변변치 못함을 인정하는 셈이다. 요즘 가문이란? 물질이 대신한다. 이런 저울추는 생각할수록 억울하다.

 

 

 

공자가 공야장을 평해서 “그는 사위로 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포승에 묶여 감옥에 있으나, 그의 죄는 아니다.” 말하고,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公冶長ᄒᆞ샤되 可妻也로다 雖在縲絏之中이나 非其罪也라ᄒᆞ시고 以其子로妻之ᄒᆞ시다 - 公冶長

 

 

공야장은 성격이 강퍅한 사람이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

 

 

공자가 남용을 평하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버림받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형벌이나 주륙을 모면할 사람이다.” 말하고,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南容ᄒᆞ샤되 邦有道애 不廢ᄒᆞ고 邦無道애 免於刑戮이라ᄒᆞ시고 以其로 兄之子妻之ᄒᆞ시다 - 公冶長

 

 

남용은 학식이 많고 덕행이 높은 군자였다.

언행이 신중하여 아무리 난세라도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 무난한 사람이다. 공자는 자신의 딸은 용감한 열사에게 출가시키고, 형의 딸은 무탈한 지성인 남용에게 시집보냈다.

 

 

남용이 백규의 시를 세 번이나 되풀이 하여 외웠으므로, 공자께서 자기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南容이 三復白圭어ᄂᆞᆯ 孔子以其兄之子로 妻之ᄒᆞ시다 - 先進

 

 

 

시경詩經 대아에서 백규白圭의 흠은 오히려 고칠 수도 있으나, 잘못된 말은 어찌할 수 없다,’며 언행을 바로잡는다.

말과 글과 댓글 카톡이 다 해당된다. 남용은 신중하기에 형벌에 걸리지 않고 어찌해도 살아남을 사람이다.

 

공야장과 남용, 사윗감으로 누가 더 나은가.

조선시대, 시대를 앞서가던 조광조는 개혁정책으로 기묘사화가 물거품이 되자 37세에 죽었다. 퇴계는 연산 7년부터 선조3년까지 열성조를 거쳐 70세까지 장수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지병을 지녀 45세 이후, 정치전선에서 물러나 학문과 교육과 수신에 힘썼다. 불과 물의 성격이 단명과 장수를 부른다. 공자의 형은 아우에 비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형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잘 보존할 사윗감을 양보한 내용이다. 공자님도 아비인지라 딸에 대한 지극함이 왜 없었겠는가.

 

시어머님은 넷째 따님이셨다.

위로 세분이 모두 과수댁이셨는데, 이모님들이 외국에서 귀한 약과 건강식을 우리 아버님께 공수하셨다. “너는 꼭 제부 앞에 가라.” 그래야 저승에서 친정 부모님을 만났을 때, 과부가 안 된 효심을 보인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아버님보다 15년이나 먼저 가셨다. 우리 아버님은 단연 일등사위가 되셨다.

 

혼례식이 끝나면 사주생년월일를 청홍보자기에 싸서 장롱 맨 밑 서랍에 보관한다.

만약 사위가 먼저 죽으면 장모와 시어머니가 동시에 안방으로 뛰어든다. 왜냐? 사성을 반으로 잘라 꽃신을 접어 관에 넣어주는 풍습이 있다. 나머지 반은 잘 간직했다가 뒷날 남은 배우자가 신발의 반쪽을 찾아가야 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저승에서도 내 아들 수발하기를 바랄 테고, 친정어머니는 고생하며 산 딸이 한 번 더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호강했으면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혼인을 하고 있는가?

서른 해 키운 자식 30분이면 끝난다. 스스로 자기 짝을 찾고, 육례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를 갖추는 용어조차 생소하다. 혼사 당일, 하객의 수가 혼주의 사회적 경제적 위상을 나타내는 잣대가 된지 오래다. 오랑캐들의 짓이라고 남을 흉볼 처지가 못 된다. 지난 나의 모습이거나 곧 닥칠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집의 아이들이 구시렁거리던 버릇이 없어졌다.

요즘은 나와 남편을 존경까지 하는 눈치다. 어떻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느냐는 볼멘소리다. 과정 없는 물색이 있을까. 세대교체의 30년 세월동안, 종종 행복했던 순간을 병풍처럼 펼치고 산다. 구정물에 손 담그지 않고 맞이한 구정이 없듯, 그간 인고의 강을 건너왔다.

 

왈가불가, 나는 인물을 물색할 자격이 없다.

딸이 없으니 사위도 없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대못을 박아 말하니, 잘 구슬려 빼내지도 못한다. 내 손과 내발로 내차 내가 타고 내 인생을 내가 안전운행 하겠다고 비혼非婚을 선언하는 시대다.

그들의 물색은 곧 자신이다.

 

 

 

* 류창희 : 메타논어, 타타타 메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논어에세이 빈빈.  매실의 초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