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아뿔싸!
어느 분이 질문한다. “카스하세요?” “저는 별로 가리지 않아요” “…” ‘대체 뭐야?’ 하는 눈초리다. 실제로 나는 술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OB든 크라운이든 아사이든 기네스든 실온이든 슬러시든 상관하지 않는다. 소주도 그렇다. 시원이든 참 이슬이든 안동소주든 분위기 따라 폭탄주라도 "위하여! 위하야!" 눈빛 마주치고 화합의 건배를 할 수 있으면 술은 다 좋다. 취한 듯 술술 달아오르던 강의실 안의 열기가 기네스 맥주 거품이 가라앉듯 검게 변하며 싸하다.
아뿔싸! 내 어찌 알았으리. 카스가 ‘카카오 스토리Kakao Story’라는 것을!
도서관 자원봉사선생님들이 회의 안건으로 제안한다. “우리, 밴드 만들어요.” 밴드, 이건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입학했던 분실 초등학교에는 피아노는 어디 갔던지 풍금조차 없었다. 노래방에서도 나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 중국어공부를 하면서도 사성四聲이 어려워 나는 또박또박 국어책처럼 읽었다. 깡통을 막대기로 두들기며 참새 쫓는 일도 제대로 못 하던 음치 박치 몸치인데 내 어찌 악기연주를 할 수 있을까.
아뿔싸! 소수의 회원을 조직하여 모임을 결성하는 ‘밴드band’를 내 어찌 알았으리.
어느 시어머니가 홈쇼핑을 보면서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 곱게 생긴 여자 호스트가 ‘애비’를 깔면 10%를 더 할인해 준다고 안내를 한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살려주는 ㅇ고데기’. 지금 사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아 다급해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한다. “에미야, 애비 집에 있냐?” “예, 집에 있습니다.” “그래, 마침 잘됐다. 어서 애비를 깔고 앉아라.” 티브이를 켜고 물건을 주문하라 재촉한다. “오늘따라 니 시애비는 어딜 나가 들어오지도 않는구나.”
아뿔싸! 그 애비가 그 ‘앱〔Application Store〕’이라는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여행을 다니면서 무조건 ‘찍자, 생존!’을 실행한다. 카메라를 들고 “익스큐즈미?” 한마디면 국적을 막론하고 흔쾌하게 응하더니 점점 인류애가 사라지는지, 어느 때부터 슬그머니 ‘당신은 지금 실례하고 계십니다.’가 되었다. 일행이 없으면 혼자서 셀카를 찍는다. 입을 쭉~ 내밀기도 하고 살짝 웃어 보기도 하는데 멋쩍은 팬터마임이다. 추억의 ‘인증샷’을 남기려면 현장의 배경이 중요하다. 짧은 팔을 대신하여 나에게 맡겨보라고 긴 막대기가 꼬드겼다. 그러나 매번 조준에 실패한다.
아뿔싸! ‘셀카봉〔Selfie stick〕’을 치켜들고 찍었더니 정수리만 나왔다.
처음 카카오톡이 나왔을 때 나는 즉시 대답해야 하는 줄 알고 오밤중에도 답을 보내느라 잠을 설쳤다. 소모임 회의도 카카오톡으로 한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한 공간에서 대화하니, 대놓고 반대의견이 없어 편리하다. 목소리와 표정이 없어도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것마저 번거로워 이모티콘의 상형문자로 부끄러워요. 안돼요. 삐친 척, 떨리는 척, 놀란 척, 자는 척, 감정 표정을 보낸다. 어느 날 아이가 “왜요? 엄마!” 정색하며 전화했다.
아뿔싸! 깨진 하트 ‘이모티콘Emoticon’이 잘못 갔다. 아들아, 어미의 사랑은 늘 온전하다.
유럽 프로방스를 돌다가 첫 번째 로터리로 빠져나가라고 쉴 사이 없이 종알대던 내비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죽어버렸다. 내비는 눈이다. 내비는 귀다. 멍청하게 시키는 대로 운전하던 우리부부는 현지에서 유럽형의 ‘톰톰’내비를 구매했다. 이건 또 뭔가. “턴, 라이트” 이후 3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려도 당최 말이 없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내비아씨가 다시 살아났다. 톰톰도령은 고속도로로 가라하고, 종알아씨는 라벤더와 해바라기 꽃을 보며 낭만을 즐기라고 시골길로 안내한다.
아뿔싸! 내 마음을 들켰다.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신이 내린 선물이 맞다.
이세돌 구단이 알파 고와 대국한다. 중학교 학부형들이 ‘알파고’가 어느 구에 있느냐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고 그 녀석이 사람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란다. “뭣이라!” 오기가 생겼다. 기계가 숭고한 인간에게 감히 도전하다니.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도구다. 가슴 따뜻한 인문학을 말하며, 사람이 이기는 그 날까지 “나는 논어수업을 할 것이다.” 큰소리쳤다. 에구머니! 강제로 전기 코드를 뽑지도 않았는데, 제4국에서 인간 이세돌이 알파고를 정말로 이겼다.
아뿔싸~! 어쩐다. ‘알파고AlphaGo’ 때문에 나, 논어 강사 그만둬야 하는가.
<<내비아씨의 프로방스>> 2017
《부산수필문예》 2016 • 여름
류창희
rch56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