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S의 강
MERS의 강
며칠째 열이 자꾸 올라간다. 사나흘 그러다 낫겠지 했는데 점점 심하다. 아파트단지 내 이비인후과에 가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음압’ 시설이 갖춰진 큰 병원으로 가라 한다. 보건소에 신고할까 하다가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대중교통을 타지 말고 자가운전해서 응급실로 들어오라는 지령을 받았다.
마른장마 무더위에 찜통 같은 응급실 앞, ‘선별진료소’로 갔다. 간이 천막에서 장갑과 마스크에 방진복을 입은 간호사와 의사가 차례로 맞이한다. 나는 고열에 시달리며 운전하느라 기진맥진한 몸으로 주소와 이름 생년월일을 손수 자필로 적고 사인했다. 내가 사는 지역이 몇몇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는 병원 근처라고 응급실은 아예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죄인이 따로 없다. 나를 보는 눈이 독사나 전갈을 보듯 꺼린다. 병원 일대는 바이러스 오염지역처럼 여겨진다. 나는 그 위험지역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서 속수무책 발이 묶였다.
전쟁이 따로 없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메르스MERS’란 균이 쳐들어왔다. 6.25처럼 포를 쏘고 한강 다리를 끊는 전쟁이 아니라, 소리 없는 6월의 함성이다. 오늘 매스컴에서 본 확진환자 번호는 147번이다. 나는 몇 번의 ‘수인囚人번호’로 분류될까? 정부가 무책임한 건지 언론의 선동인지 국민은 마스크를 쓰고 불신과 공포로 서로 의심하고 견제한다. 일부 지역 병원과 마을과 학교가 폐쇄되고 휴교 중이다. 남북 분계선 38선을 넘는 것도 아니면서, 38도가 넘는 몸으로 혼자 운전하고, 혼자 병원 가고, 혼자 검사실마다 가서 검사받고, 혼자 약국 가고, 그리고 혼자 집에 자가 격리되어 열을 식히고 있다.
온몸의 근육통과 사지 통으로 헛소리하고, 일어나면 헛구역질하고 누우면 머리가 쪼개진다. 잠시 열이 사그라지면 늪에 빠진 듯 진땀을 흘린다. 혀의 기호체계가 무너졌다. 맹물도 쓰지 않으면 달다. 먹은 것이 없으니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배 속의 창자마저 빠져나오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얼굴은 잘 익은 만두 마냥 부풀어 오르고, 가위로 잘라도 아프지 않던 머리카락까지 아프다. 마른 옥수수수염같이 푸석하더니 마침내 가닥가닥 빠진다.
그만하고 싶다. 10시간 넘게 산고를 틀던 며느리가 10분만 기다리면 남편이 도착할 거라 해도 “싫어, 싫어!”를 외치며 “끝내고 싶다”고 소리치던 그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이다. 그래도 산통은 길어야 하루 이틀이다. 진통제를 시간 맞춰 먹고 잠시라도 잠들면 잊힐까 싶어 밤과 새벽으로 수면제를 자꾸 넘긴다. 숨 쉬는 일이 고통이다. 수업시간마다 기를 끓어 올리던 목청의 결절일까. 참는 것이 이력이 난 방광의 문제일까. 피를 토하고 썩어 문드러졌던 폐결핵의 재발일까. 폐만 신경 쓰느라 곁에서 관심 한 번 못 받고 슬며시 지나갔던 늑막염의 반란일까. 글 쓰느라 호두알 같은 뇌 속의 꽈리가 터졌을까. 그보다, 정말 메르스일까? 무엇이든 어떠한 병명이 나오든 아프기는 마찬가지. 이쯤에서 나야말로 끝내고 싶다.
아픈 것보다 심한 고통이 있다. “당신은 이기적이야.” “당신은 공인으로써 비양심적이다.” “스스로 의심이 되었다면 보건소에 자진신고 했어야지.” 남편의 비난이다. 늘 아플 때마다 미련하게 참으면서 버티는 꼴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인 줄 잘 안다. 얼마나 아내를 잃을까 봐 겁이 나면 그토록 모진 말을 할까. 그러나 누가 이 지경을 상상이나 했나. 편도 좀 붓는 그까짓 고뿔 따위가 무슨 대수라고 병원을 간담. 여태까지 나는 감기가 걸리면 부주의했던 체온조절을 반성하고, 몸살이 나면 열심히 일한 당신 쉬라는 ‘축복’으로 여기며 보름 정도 빈둥거리다 보면 나았었다.
그즈음 나는 서울로 경기도로 울산으로 강의를 다녔다. 어떤 모임은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수시로 왔다. 정부에서도 공적인 문화행사일수록 무산되었다. 생업일지라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나도 걱정이 되어 사전에 몇몇 기간이나 모임에 상의했으나 과민한 반응이라며 일이 진행되었다. 경기 북부는 괜찮다고 했던 ‘양주골 문학회’, K중학교의 ‘학부모 인문학 교실’, 찾아가는 ‘인문학 콘서트’의 H고등학교의 3학년 학생들, 남편 동기회 12팀 부부동반 모임, 시월에 미국으로 출국할 시애틀 사람들, ‘에세이부산’ 정기모임 등에 참석했었다. 같은 시간 같은 칸에 KTX를 탔던 사람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몇 개의 지하철 환승역에서 스쳐 간, 사람, 사람들…, 점조직처럼 사돈에 팔촌까지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숫자가 엄청나다.
남편의 말이 옳다. 내가 만약 확진으로 판명되면 그 많은 이들에게 일파만파 확산될 쓰나미를 어찌할까. 땡볕에 나앉아 석고대죄해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숨어있다. 아픈 것은 나 혼자 끝내면 그뿐이다. 나와 상관없는 제3의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양심 없는, 개념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확진도 아닌 의심환자로서 ‘메르스 왕따’의 주홍글씨를 날마다 베갯머리에 수놓는다. 내가 평생 그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이 염천 더위에 화형火刑을 받아야 할까.
또 병원에 가는 날이다. 속옷가지와 세면도구를 담은 입원 가방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다른 방에 기거하는 남편에게 거듭 카카오톡을 보냈다. 이 방에 있는 것, 통장 현금 금가락지만 빼고 몽땅 불태워요. 세일할 때 새로 사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진흙염색 치마와 속옷들도 있는데, 새것이라도 아깝다 생각 말고 그냥 다 태워요. 책도 가구도 “태워요, 태워요.” 벌써 몇 번째 당부다. 병원에 갈 때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덥던 이불 침대도 그대로 다 태워버려요. 내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하나도 밖으로 내가지 못하게 했다. 이웃에게 친지에게 가족에게 방어벽을 치고 스스로 자가 격리했다. 그날따라 TV에서는 메르스 확진 환자로 아내가 죽었는데 남편도 자식도 화장터에 가지 못하고 의료진들이 마지막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영결식 장면이 나온다.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편한테 그동안 수고했다. 내 곁을 지켜주어 고맙다. 아들들에게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 다만 며느리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갓 시집와서 사랑해줄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나에게 독백한다. 여한 없이 힘껏 살았다. 오늘 삶이 끝날 수도 있는데,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위해 너무 애쓰고 살았다. 그동안 가족과 지인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모든 삼라만상에 고맙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내 카미유의 주검 빛깔을 그리던 빛의 화가 모네처럼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오른다. “내게 너무도 소중했던 한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자신의 상태를 타인처럼 관망하고 있다.
오버라고? 너무 앞서 멀리 갔다고? 그만큼 나는 날마다 절박했다. 인도印度의 카스트제도가 있다. 그 제도에 비유하자면 나는 2단계 정도는 오르고 싶어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내리자. 내려놓자. 만약 살 수 있다면, 고지를 하향 조정하여 3등급으로 낮출 것이다. 4등급인 하위에 두기에는 그동안 쌓아 온 공이 아깝다. 우선 일을 줄이겠다. 노력도 사치다. 기도문처럼 빌었다. 오직 내게 남은 것은 열에 들끓는 몸뚱이뿐인 줄 알았는데…, 어디에 저장되었다가 나오는지 눈물이 줄줄 나온다. 엎드려도 미어지듯 가슴이 조여 온다.
또 나락으로 까부라진다. 어딘가 가고 있다. 기찻길이다. 파꽃이 민들레 홀씨처럼 하얗게 폈다. 파꽃에 벌이 날아든다. 고무신을 들고 파꽃에 앉은 벌을 잡아 빙빙 돌리다 힘껏 내리쳤다. 내팽개쳐진 고무신 안의 벌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깊은 잠속에 들었다.
“휴우~!” 편안하다. “어라!” 그런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온몸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열흘 넘게 내 몸을 태우던 아궁이가 물 끼얹은 듯 식었다. 같이 뛰던 <비정상회담> 맴버들도 나가고, <시월드> 수다쟁이 게스트들도 나가고, <썰전>과 <강적>의 멤버들도 다 나갔다. 마치 단체 줄다리기에서 애만 쓰고 줄밖으로 나만 혼자 나동그라진 느낌이다. 빈방에 우두커니 홀가분하다.
요단 강, 그 강의 다른 이름 ‘메르스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기어 나왔다. 메르스 의심환자라고, 선별 진료한다고, 자가 격리로 입원도 안 받아주고, 그 흔한 수액 링거 한 대도 수혜 받지 못하고 혼자 창과 방패를 들고 강의 언저리에서 맞섰다. 대책 없이 치솟던 간 수치와 백혈구 수치와 싸웠다. 고열에 시달린 지 보름 만에 알아낸 병명 ‘급성 B형 간염’이었다.
그제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핸드폰 문자가 보인다.
〔D대학교병원 이용 안내문〕
D대학교 병원에 입원한 메르스 환자는 최첨단 음압격리병실에서 치료 후 완치되어 25일 퇴원하였습니다. 퇴원 후 철저하고 광범위한 방역소독을 시행하여 병원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르스 의심환자를 철저히 분리 진료하는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열 감지 카메라 등을 통해 의심환자의 병원방문을 원천차단하고 있습니다. D대학교병원은 부산 유일 국가지정 메르스 거점치료병원이자 국민 안심병원으로 엄격한 감염관리로 환자 안전에 완벽함을 행하고 있사오니 안심하고 내원하여 진료를 받으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D대학교 병원장 김oo
“야! 지금 너희 뭐하는 거야!” “너희도 죽도록 아파볼래?” “나, 그동안 너희에게 방치되었었잖아, 너희가 선별진료라는 이름으로 병원 밖에다 나를 내버렸었잖아” “원천차단! 웃기고 있네!” 소리치고 싶다.
그래도 입원했다가 메르스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보다 나았던 거라고,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며 마비되었던 국가의 비상사태였다고, 너는 하필 그때, 왜 아팠느냐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스스로 달래고 위로한들, 나는 몹시 아팠었다. 그중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비양심적’이라는 남편의 비난이 가장 무서웠다.
담당 주치의 의사는 병원 측의 대변인처럼 “우리도 ‘프로패셔널’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 못한 걸 이해하시겠죠?” 동의를 구한다. 그러나 나는 내 목숨을 담보로 남의 전문 업종을 지켜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신神이다. 극락왕생 부처보다 천국의 예수보다 눈앞에 살아있는 현신現神이다. 신의 은총만을 기대하던 나는 당했다는 억울함이 크다. 선별진료비 특진비 각종 검사비 초음파 비용을 다 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나는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아무리 너그러운 척해도 화가 난다. 그런데 슬픈 건 화낼 기력이 없다.
메르스 잠복 기간 2주 후 2015년 6월 30일, 나는 감염내과에서 간 센타로 이적되었다. 노련한 간염 내과 선생님 말씀, “그동안 혼자 참아내느라 수고하셨어요, 큰일 날 뻔했습니다. 메르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뭐라? 그럼 나를 졸업시킨다며 “아직도 메르스 균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던 프로패셔널한 젊은 의사의 소견은 도대체 무슨 횡포인가.
신神은 더러 나락이거나 지옥이다. 메르스라는 강물 위에 남몰래 모아 놓은 내 쌈짓돈만 둥둥 떠다닌다.
※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 과거 사람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중증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최근 중동지역의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주로 감염환자가 발생하여 ‘중동 호흡기 증후군’으로 명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내비아씨의 프르방스>> 류창희 / 선우미디어
2015년 에세이부산 14집
류창희
http://rchessay.com